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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만들기 전에, 팔릴 것인지 먼저 확인하라."

구글의 첫 엔지니어링 디렉터이자 스탠퍼드대 혁신 마이스터인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쓴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The Right It)》에 나오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이 말을 이해합니다. "맞아, 만들기 전에 먼저 될 것을 확인해야지." 하지만 막상 현실의 늘 '제대로 만들기(Build It Right)'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창업을 하려면 그럴듯한 사무실과 로고가 있어야 해." "앱을 출시하려면 버그 없는 완벽한 코딩과 세련된 디자인이 필요해." "피규어 사업을 하려면 일단 3D 프린터부터 사고, 모델링 공부해야지."


저의 시작은 조금 엉뚱했습니다. 최근 저는 취미로 드론 제작을 제작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내 모습 피규어 만들기' 영상을 접했고,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나만의 피규어를 만들고 싶어 하고, 이걸 반려동물에 적용하면 돈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본 "내 모습 피규어 만들기" 영상


하지만 예전처럼 사이트부터 만드는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될 놈인지 확인하기 전까진, 단 1원도 쓰지 않고 절대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은 제품이 단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단돈 0원으로 시장성을 검증해 본 24시간의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 실험 기록입니다.


1. 가설 설정: '달콤한 의견'은 버리고 '차가운 데이터'만 믿어라

아이디어 단계에서 친구나 동료에게 "내 아이디어 어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관계를 생각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와, 대박인데? 나오면 나 무조건 산다! 진짜야."

하지만 책에서는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그런 의견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적극적 거짓말(The Fluff)'일 수 있다고요. 사람들은 자신의 돈이 들지 않을 때는 얼마든지 관대해집니다. 믿어야 할 유일한 진실은 지갑을 여는 행동, 즉 '나만의 데이터(YODA: Your Own Data)'뿐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는 먼저 제 아이디어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장의 성공 정의, 즉 '대문자 XYZ 가설'을 세웠습니다.


XYZ 가설: 궁극적인 시장 가설

적어도 10%(X)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20~30대(Y)는 10만 원짜리 맞춤형 3D 피규어를 구매(Z)할 것이다.

하지만 이 거창한 가설을 당장 검증하기엔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전국의 2030(Y)'을 타겟팅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듭니다.

'10만 원(Z)'을 받으려면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고퀄리티의 실물 제품과 패키징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거대한 XYZ 가설을 당장, 제 방 안에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검증할 수 있는 ‘더 작고 테스트하기 쉬운 소문자 xyz 가설'로 축소했습니다.


xyz 가설: 로컬 테스트용 소문자 가설

적어도 10%(x)의 당근마켓 판매 글을 본 동탄 송동 주민(y)은 3만 원을 내고 반려동물 사진을 보내며 제작을 의뢰(z)할 것이다.

이 소문자 xyz 가설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x (목표): "에게? 겨우 10%?"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도, 브랜드 인지도도 없는 상태에서 낯선 사람들의 10%가 지갑을 열게 만드는 건 '0에서 1을 만드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단계입니다.

y (타겟): 전국(Y)을 대상으로 하기엔 광고비가 듭니다.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동탄 송동)라는 좁은 지역, 즉 프로빈셜(Provincial) 환경으로 타겟을 좁혔습니다.

z (행동): 단순히 "관심 있어요", "얼마인가요?"라고 채팅을 보내는 건 1점짜리 가벼운 데이터입니다. 진짜 데이터는 '자신의 반려동물 사진을 전송하는 행위'입니다. 스마트폰 갤러리를 뒤져 가장 예쁜 사진을 고르고, 낯선 판매자에게 사적인 사진을 전송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진짜 구매 의사가 있는 고객이라 판단했습니다.


2. 실험 설계: 프리토타이팅, 가짜문기법

이 실험의 핵심은 아직 없는 제품을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가짜 문(Fake Door)' 기법입니다.

핵심은 사용자가 실제 제품이 있도록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이 핵심을 기반으로 '프리토타이핑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1) 제품 사진: AI 기술을 활용해 0원으로 시제품 이미지 제작

피규어 아이디어를 생각하면서 든 생각이 실제 이걸 굳이 내가 수작업으로 모델링해야 할까? AI가 다 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봤고, 실제 사진을 Nano banana pro를 활용해 3D 피규어 이미지로 생성 후 모델링 AI인 mesh.ai를 사용해서 모델링을 적용할 때 성능이 가장 좋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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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o banana로 만든 3D 피규어 이미지


먼저, 실제 고양이 사진을 첨부하고 프롬프트(Prompt)를 정교하게 조정했습니다. "Glossy plastic texture, 3D render style, cute proportions..." 단순히 그림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 3D 피규어 이미지로 생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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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hy.ai로 만든 모델링


그럴듯한 이미지가 나왔다고 끝이 아닙니다. 실제 제작이 불가능하면 사기가 되니까요. 생성된 이미지를 다시 'Image to 3D Model' AI인 Meshy.ai에 넣어, 실제로 3D 모델링 파일로 변환이 가능한지 검증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사진만 보내주시면 모델링까지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술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단 3분 정도면, 수십만 원짜리 장비나 외주 비용 없이도 완벽한 '가상의 시제품 포트폴리오'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2) 판매 채널: 왜 하필 당근마켓이었나?

수많은 채널 중 당근마켓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강조한 '데이터까지의 거리(Distance to Data)'가 압도적으로 짧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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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당근 마켓에 올린 글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PG(결제)사를 붙이고, 광고를 집행하는 데는 최소 며칠의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달랐습니다.

  • 비용: 0원

  • 시간: 이미지 생성부터 판매 글 작성까지 단 30분

이처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진짜 고객의 반응'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였습니다. 게다가 동네 인증 기반이라 이웃 간의 신뢰도가 높고, 채팅을 통해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습니다.


변수 발생: 실험 시작 24시간 만에 '주문 제작 상품 거래 금지' 운영 정책 위반으로 게시글이 숨김 처리 되었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오히려 이 제약 덕분에 실험은 의도치 않게 딱 하루만 진행된 '24시간 단기 속성 테스트'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더 밀도 높은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었죠


3) 가격 및 명분: 의심을 지우는 장치

제품도 없는데 무턱대고 비싼 가격에 팔면 사기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확보 목적"이라는 타당한 명분을 내세워, 정가(10만 원) 대비 파격적으로 저렴한 3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선착순 3명"이라는 희소성 장치를 걸어 고객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했습니다.


3. 결과: 예상치 못한 반응 (매출 21만 원 달성)

게시글을 올리고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신고당하면 어쩌지?', '아무도 연락 안 오면 어쩌지?' 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글을 올린 지 단 하루 만에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조회수: 70회

  • 관심(하트): 5개

  • 채팅 문의: 3명

  • 실제 구매 확정(사진을 보내고 주문): 2명 (총 7개 주문)


놀랍게도 채팅을 주신 3명 중 2명이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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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객님: 펫로스로 떠나보낸 두 아이를 위해 각기 다른 동물 2개 주문

B 고객님: "너무 귀여운데 한 마리를 여러 포즈로도 되나요?"라며 한 동물의 다양한 포즈로 5개 대량 주문


단순 계산으로도 하루 만에 매출 21만 원(7개 x 3만 원) 가치의 수요를 확인한 셈입니다. 70명이 보고 7개가 팔렸으니, 주문 전환율은 10%에 육박합니다. 보통 잘 만든 이커머스 상세페이지의 구매 전환율이 약 1~2%인 것을 감안하면, 5배가 넘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진짜 니즈'

단순히 '주문 7건'이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채팅 과정에서 발견한 고객들의 숨겨진 욕망이었습니다.


Case 1. 펫로스(Pet Loss) 고객님은 채팅으로 조심스럽게 긴 사연을 보내오셨습니다.

"작년에 한 아이가 가고, 한 달 전 나머지 아이도 떠났어요... 특이 견종이라 시중에서 굿즈 찾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우연히 이 글을 보자마자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두 아이 다 가능할까요?"

이분에게 3만 원이라는 가격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떠나간 아이를 추억하고 싶지만, 시중의 기성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주문이 마감되어 죄송하다"고 안내하자, 이분은 오히려 "아이들 사진을 미리 보내놓을 테니, 언제든 좋으니 제발 만들어만 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이 순간, 저는 이 아이템이 단순한 피규어가 아니라 그 이상을 담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Case 2. 객단가(Upsell)의 확장성

"혹시 여러 개 제작 가능 하나요?
같이 세워두고 싶어서요.""포즈별로 다 갖고 싶어요."

처음에는 고객당 피규어는 하나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내 댕냥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고객 한 명당 기대 수익(LTV)이 초기 예상보다 훨씬 높을 수 있으며, 추후 '다양한 포즈 세트', '계절 코스튬 에디션' 등으로 상품 라인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4. 회고: '가짜 문' 뒤에서의 윤리적 응대

프리토타이핑을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이거 완전 사기극 아니야?"라는 도덕적 죄책감입니다.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에 나오는 'Real Fake Doors' 광고처럼, 문을 열었는데 뒤에 벽밖에 없다면 그건 명백한 사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말하는 가짜 문은 다릅니다.


진정한 프리토타이핑은 고객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수요를 확인한 뒤 그들에게 더 좋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약속입니다. 저는 수요 확인 후 문의를 준 모든 분께 즉시, 그리고 솔직하게 응대했습니다.


솔직한 사과: "죄송합니다. 실제 바로 제작이 어렵습니다."

미래의 약속&혜택 제공: "대신, 대기 명단에 올려드리고 제작 가능 시, 할인된 가격으로 연락드려도 될까요?"(실제 3D프린터 주문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화를 내거나 사기라고 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2명(구매 확정자) 전원이 "그럼요, 기다릴게요. 꼭 연락 주세요"라며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하루 만에 마케팅비 0원으로 즉시 구매해 줄 '진성 잠재 고객'을 확보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5. Next Step: 진짜 '될 놈'을 향하여

물론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저는 이제 막 '우측(성공 가능성 높음)'에서 화살표 하나를 확보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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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척도


이번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한계도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판을 키워 두 번째 실험에 돌입합니다. 따뜻한 동네를 벗어나, 냉정한 야생으로 나가보려 합니다.

  • 채널: 인스타그램 광고 (전국 타겟)

  • 방식: 랜딩 페이지를 통한 웹사이트 전환 실험

  • 두번째 xyz 가설: "적어도 5%(x)의 인스타그램 광고를 클릭해 랜딩 페이지에 들어온 사람(y)은 '주문 등록'을 위해 이메일과 반려동물 사진을 남길 것(z)이다."

  • 목표: 클릭 대비 대기 명단 등록 전환율 5% 달성


제품 하나 없이 시작한 24시간의 실험.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매출 21만 원의 가치를 가진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검증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짜릿했고, 단기간에 실제 비즈니스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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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플로우


현재 저는 첫 번째 프리토타이핑 실험을 마쳤고, 추가적으로 실험을 통해 나만의 데이터를 확보해 실제 될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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